[부엪오피셜] 2017년 5월 15일 손한섭선수 인터뷰(with 한게인터뷰) – Busan Football Club

[부엪오피셜] 2017년 5월 15일 손한섭선수 인터뷰(with 한게인터뷰)

[부엪오피셜] 2017년 5월 15일 손한섭선수 인터뷰(with 한게인터뷰)
 해마다 부산에서는 몇 백여명의 선수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들은 학창시절 때 오직 축구에만 매진한 나름의 엘리트 인재들입니다. 하지만 큰 부상에, 집안 형편에 예기치 못한 사정들로 인해 축구를 그만두는 경우가 부지기수죠. 현재 ‘K3 베이직 리그에 소속되어 있는 부산FC는 이러한 청춘들을 끌어 모아 차근차근 나아가는 신생팀입니다. 나름대로의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죠. 저는 이제 이곳 부산FC에서 찍어뒀던 쉼표를 거두고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젊은이들의 위대한 스토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 ①마르셀로를 꿈꾸는 손한섭

부산FC의 사상 첫 홈 경기였던 평창FC와의 일전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선수가 있었다. 등번호 12번의 손한섭. 이날 오른쪽 윙으로 선발 출전했던 그는 압박부터 역습까지 다방면으로 팀의 경기력에 크게 관여했다. 팀이 0-1로 뒤지고 있던 전반 28, 이 선수는 호쾌한 중거리 슛으로 동점골까지 넣으며 선수와 팬들의 축하를 받았다.

원래 주 포지션은 왼쪽 풀백이지만 앞선 두 경기에서 11도움으로 공격적인 재능을 뽐냈다. 그렇게 감독에게 공격성을 인정받은 손한섭은 그날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윙어라는 직책을 맡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축구를 시작했었는데, 그땐 센터 포워드를 맡았었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때 우연히 풀백을 맡은 뒤로 지금까지 줄곧 왼쪽 측면 수비수를 담당했습니다. 나름 공격수 출신이라 그런지 오버래핑 하나엔 자신 있었어요. 감독님도 그걸 아시고는 저에게 자신감 가지고 공격하러 나가라고 말했고요. 이전 두 경기에서 연속으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해서 그런지, 어느 날 감독님께서 절 부르시더니 윙어로 한 번 뛰어보는 게 어떠냐고 물으시더라고요.”

평창전에서 동점골을 넣고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있다

손한섭은 감독에게 윙어를 권유받을 정도의 탁월한 공격력으로 팀의 주축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그렇게 파란만장 하지는 않았다. 대전시티즌 U-12인 천안성거초등학교에서 축구의 첫 발을 디딘 그는 양평중학교로 스카우트 될 정도로 나름 촉망받던 선수였다. 하지만 가장 기량이 급성장 할 시기인 고등학교 때 그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다가왔다.

고등학교 때 무릎 쪽에만 큰 부상을 세 번이나 당했어요. 제 기억속의 고등학교 시절은 재활 훈련을 했던 것 밖에 없어요. 경기에 다시 뛸 만하면 부상당하고, 회복하면 또 부상당하고결국 그 흔한 축구대회 한 번 제대로 나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같이 뛰던 친구들은 다 잘해서 프로팀으로 진출하기도 했고 그랬는데 저는 경기 한 번 제대로 뛰어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저에게 고등학생 때는 정말 힘겨웠던 시절이었어요.”

웬만한 프로 선수들도 부상 악령은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고종수, 김병수, 윤정환 등 어릴 적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선수들도 잦은 부상 때문에 비운의 스타라는 수식어구와 함께 쓸쓸히 은퇴를 결심했다. 하물며 최정상급 기량을 지닌 선수들도 잡아먹는 이 부상 악령인데 아직 한창 성장해야 했던 그가 이겨내기에는 엄청난 무리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부상 때문에 기량이 전혀 오르질 않았어요. 재활훈련에 지치기도 했고 다가오는 미래도 겁나고 해서 더 이상 축구를 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20살이 되고나서는 회사일도 하고 서빙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생활했어요. 그동안 축구하느라 제대로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면서 나름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축구와 연을 뗀지 2년 반이 흘렀다. 더 이상 축구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하지만 학창시절 내내 축구부에 몸담았던 그에게 축구는 언제나 애증의 대상이었다. 공만보면 힘겨웠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라 진저리가 나더라도 축구선수가 된 친구들의 소식을 SNS을 통해 들을 때나 축구경기를 볼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축구화를 다시 신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결국 그는 다시 축구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축구를 안했을 때 처음은 행복했어요. 뭔가 후련하기도 했고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계속 축구가 하고 싶어져서 누구한테라도 털어놓을 겸 SNS에 축구 다시 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었는데 우연히 제 글을 본 아는 형이 다시 축구 해보지 않을래?’라며 물어봤어요. 전 일체 고민도 없이 바로 하겠다고 했죠.(웃음)”

평창전 경기 전에 찍었던 사진. 맨왼쪽 아래의 선수가 손한섭이다

아는 형이 알려준 곳은 바로 부산FC 입단테스트였다. 그 형은 이미 테스트에 통과하여 부산FC 소속으로 경기를 뛰고 있었고(지금은 말레이시아 리그에서 뛰고 있다고 한다) 구단이 선수를 더 모집한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는 손한섭에게 그 소식을 알려줬던 것이다. 손한섭은 형의 권유를 듣자마자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곧장 본집인 아산에서 테스트가 진행되는 부산으로 한걸음에 내려갔다. 테스트 통과 연락을 받은 날, 그는 어느 때보다도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부모님께 합격 소식을 알렸다.

푸른 잔디, 유니폼, 축구화까지 2년 반 만에 재회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모든 것들이 그동안 축구에 목말랐던 그에게는 행복 그 자체로 다가왔다. 주변에 함께 축구를 하는 동료들과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주시는 감독님과 코치님이 다시 있다는 사실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경기를 하면서 골도 넣고, 가족들의 응원도 받으면서 어느덧 잠시 잠재워뒀던 꿈과 목표도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시간도 좋았지만 축구화를 다시 신은 지금이 저에겐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것 같아요. 그때의 설움도 알기에 더욱 훈련이랑 경기에 열심히 임하기도 하고요. 제가 학창시절 축구부에 있을 때 마르셀로 같은 풀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제 목표이기도 한데, 요즘 다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아직은 먼 꿈 얘기긴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구단인 아스날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웃음). 제가 다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엄청난 행복이죠.”

사실 그가 다시 축구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특히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큰 부상으로 이미 몇 번의 곤욕을 치루었던 아들이 또 축구선수가 된다는 말이 그저 무모한 도전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골도 넣고 어시스트도 기록하면서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자 이제 부모님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부산까지 찾아와 아들을 응원하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31녀 중 장남인 손한섭은 이제 동생들의 응원도 함께 받고 있다. 그는 둘째 동생도 저랑 함께 학창시절 때 축구를 했었다. 지금은 비록 나라를 지키고 있는 군인이지만 나의 노력을 누구보다 알기에 힘도 주고 고민도 들어주는 가장 든든한 존재라고 말했다.

축구선수라는 기회를 다시 한 번 부여받은 그에게 이제 더 이상의 포기는 없다. 무모한 도전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는 아스날의 마르셀로가 될 때까지 끝까지 달릴 생각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엄마,아빠! 말도 잘안듣는 여전히 철없는 아들이 축구하는데 항상 뒷바라지 해주시느라 힘드실텐데 제가 꼭 열심히해서 좋은 모습으로 보답할게요. 지금처럼 믿고 응원 많이 해주세요!”

1 댓글

  • 강희용 Posted 2017년 9월 12일 3:59 오후

    멋있다. 감동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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